'짠돌이 구단'의 대명사였던 토트넘 홋스퍼가 마침내 지갑을 열었다. 구단의 최대 주주인 루이스 패밀리가 에닉 그룹을 통해 1억 파운드, 우리 돈으로 약 1890억 원에 달하는 막대한 자본을 구단에 직접 투입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는 지난 수십 년간 인색한 투자로 팬들의 원성을 사왔던 구단의 운영 기조가 뿌리부터 뒤바뀌는 신호탄으로 해석된다. 현지 언론조차 "토트넘 역사상 가장 상징적인 자본 투입"이라며 놀라움을 표했다. 구단 측은 이번 조치가 재정 건전성을 확충하고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스포츠적 성공을 이루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지만, 팬들은 지난 시즌 리그 17위까지 추락하며 십자포화를 맞았던 보수적인 경영 철학이 드디어 막을 내리는 것 아니냐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다.

 

토트넘의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돈을 푸는 것을 넘어, 구단의 미래 비전 자체가 달라졌음을 시사한다. 최근 토트넘은 브루클린 투자 조합이 제시한 33억 파운드(약 6조 2300억 원)라는 천문학적인 인수 제안을 단칼에 거절하며 매각설을 일축했다. 이는 선수 영입 자금 12억 파운드(약 2조 2600억 원)까지 포함된 파격적인 조건이었음에도, 루이스 패밀리는 "토트넘의 지배권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확고한 입장을 고수했다. 이러한 결단의 배경에는 지난 시즌 17년 만에 유로파리그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성공의 맛'을 본 것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무관의 사슬을 끊어낸 이 짜릿한 경험이 구단주로 하여금 더 큰 야망을 품게 했고, 이제는 단순한 재정 건전성을 넘어 '챔피언 DNA'를 심기 위한 본격적인 프로젝트에 돌입했다는 선언으로 읽힌다.

 

하지만 이러한 구단의 야심 찬 변화를 바라보는 팬들의 마음은 복잡하기만 하다. 특히 10년간 팀의 상징이었던 손흥민이 전성기를 보내는 동안에는 외면하다가, 이제 와서야 대대적인 투자를 단행하는 모습에 아쉬움과 탄식이 교차하는 것이다. 손흥민은 아시아인 최초의 프리미어리그 득점왕, 챔피언스리그 준우승 등 눈부신 족적을 남겼지만, 그의 우승을 향한 열망은 늘 구단의 소극적인 투자에 가로막혔다. 팬들은 유럽 정상급 공격수가 팀의 야망 부족에 갇혀 커리어 내내 무관에 그친 것을 안타까워하며 '손흥민이 있을 때 이렇게 투자했더라면' 하는 가정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결국 이번 투자는 손흥민 시대의 종언과 함께, 그에게는 끝내 허락되지 않았던 '우승을 위한 투자'라는 점에서 씁쓸함을 남긴다.

 

손흥민이 떠난 토트넘은 이미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브렌트포드 돌풍을 이끈 토마스 프랑크 감독을 선임하고, 마티스 텔, 모하메드 쿠두스, 사비 시몬스 등 과거라면 상상하기 어려웠던 거물급 신입생들을 연이어 영입하며 전력을 보강했다. 그 결과는 즉각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올 시즌 리그 7경기에서 4승 2무 1패로 3위를 질주하며 상위권에 안착했고, 신입생들은 손흥민의 공백을 최소화하며 맹활약 중이다. 이번 1억 파운드 투자는 이러한 변화의 흐름에 기름을 붓는 격이다. 단발성 지원이 아닌, 경영진 교체, 새 감독 선임, 유망주 영입으로 이어지는 장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토트넘이 마침내 빅6의 틀을 넘어 유럽 무대의 진정한 강자로 거듭나기 위한 모든 조각을 맞춰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