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노벨 문학상의 영예는 헝가리 현대 문학을 대표하는 거장,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71)에게 돌아갔다. 스웨덴 한림원은 지난 9일(현지 시간), 그의 작품 세계가 "종말론적 공포의 한가운데에서도 예술의 힘을 새롭게 확인하게 하는 강렬하고 비전적인 세계"를 보여준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이로써 크러스너호르커이는 2002년 임레 케르테스 이후 23년 만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두 번째 헝가리 작가로 기록되었다. 한림원은 그를 카프카와 토마스 베른하르트를 잇는 중부 유럽 서사 문학의 적통으로 평가하면서도, 그의 시선이 동양을 향해 있으며 끝없이 이어지는 독창적인 문장 속에서 현대 문명의 깊은 불안을 예술의 언어로 승화시켰다고 극찬했다. 이는 그의 문학이 단순히 특정 지역의 전통에 머무르지 않고, 인류 보편의 실존적 고민을 독창적인 형식으로 탐구해왔음을 인정한 것이다.

 

크러스너호르커이의 문학 세계를 관통하는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바로 그의 숨 막히는 문체에 있다. 그는 수십, 수백 페이지에 걸쳐 쉼표와 접속사로만 이어지는, 끝을 알 수 없는 긴 문장을 구사하는 것으로 악명 높다. 대표작 '저항의 멜랑콜리'는 헝가리어 초판 기준으로 300쪽이 넘는 분량이 단 하나의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데뷔작 '사탄탱고' 역시 12개의 장이 각각 하나의 거대한 문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형식적 실험은 단순히 기교를 넘어, 혼돈과 붕괴로 치닫는 세계의 모습을 언어적으로 완벽하게 구현하려는 작가의 치열한 시도로 읽힌다. 거대한 고래 사체를 끌고 온 서커스단 때문에 파국으로 치닫는 마을의 광기를 그린 '저항의 멜랑콜리'처럼, 그의 작품 대부분은 체제의 붕괴, 신의 부재, 인간의 절망과 같은 무거운 주제를 다루며 독자를 혼돈의 심연으로 끌고 들어간다.

 

이러한 파국적 서사는 1954년 공산주의 체제 하의 헝가리에서 태어난 작가의 개인적 경험과 무관하지 않다. 그의 작품에 짙게 드리워진 폐허와 절망의 정서는 동유럽 현대 문학이 공유하는 공통된 감수성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의 문학은 단순히 절망의 기록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에서 위대함을 획득한다. 미국 작가 수전 손택이 그를 "종말의 거장"이라 칭했듯, 그는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폐허 속에서도 인간이 끝내 포기하지 않는 예술적 신념과 언어의 힘을 집요하게 탐색한다. 크러스너호르커이 스스로 "35년 동안 이어진 그 과정 속에서 나는 언어의 아름다움, 그리고 지옥 속의 유희를 발견했다"고 말했듯, 그의 문장은 세계의 종말을 예감하면서도 그 안에서 인간 존재의 존엄과 예술의 의미를 되살리려는 처절한 몸부림의 결과물인 셈이다.

 

이번 수상 소식에 국내외 출판계 역시 뜨겁게 반응하고 있다. 지난해 아시아 여성 최초로 한강 작가가 수상한 데 이어, 올해는 비영어권 남성 작가가 호명되면서 문학의 다양성을 조명하려는 한림원의 최근 행보가 다시 한번 확인되었다. 크러스너호르커이의 국내 판권을 보유한 알마 출판사 측은 그의 문학이 "무겁고 암울하지만 그 안에 유머와 희망이 숨어 있으며, 난해함 속에서도 예술이 주는 순수한 기쁨을 느낄 수 있다"고 소개했다. 출판계에서는 이번 수상을 계기로 그의 작품은 물론,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던 헝가리를 비롯한 동유럽 문학 전반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이 크게 증폭될 것으로 기대하는 분위기다. 그의 또 다른 작품 '헤르슈트 07769'가 내년 초 번역 출간을 앞두고 있어, '크러스너호르커이 현상'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