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가이드
“수술 시작합니다” 의사 말에 로봇이 움직였다

“수술 시작합니다. 가위 주세요.”
의사의 말이 끝나자 휴머노이드 로봇의 손이 움직였다. 사람 간호사처럼 음성으로 지시를 이해하고 수술에 필요한 가위와 그래스퍼(집게)를 집도의에게 건넸다. 맞은편의 또 다른 로봇은 내시경 렌즈를 조작했다. 의사의 지시에 따라 수술 부위가 잘 보이도록 조직을 당기고 화면을 확대하는 역할을 맡았다.
삼성서울병원이 지난 16일 휴머노이드 로봇을 활용한 수술을 시연했다. 이날 오남기 이식외과 교수는 별도의 의료진 도움 없이 휴머노이드 로봇 두 대와 함께 염소의 담낭을 제거했다. 집도의 한 명과 휴머노이드 로봇 두 대가 수술을 함께 수행한 것은 세계 최초 사례다.
현장을 지켜본 간호사들은 로봇의 움직임을 실제 수술방 간호사와 비교하며 놀라움을 나타냈다. 수술 시연이 성공적으로 끝나자 현장에서는 박수가 나왔다. 단순히 수술 기구를 옮기는 것을 넘어 의사의 음성 지시에 맞춰 여러 동작을 수행했다는 점에서 관심을 끌었다.
이번에 선보인 휴머노이드 로봇은 삼성서울병원이 지난해 7월 한국형 ARPA-H 과제 주관 기관으로 선정된 이후 개발해 온 결과물이다. 한국형 ARPA-H는 미국 보건의료고등연구계획국(ARPA-H)을 모델로 고난도 의료기술 개발에 집중 투자하는 정부 연구개발 사업이다. 여러 연구팀이 경쟁하고 단계별 평가를 통과한 연구팀에는 후속 지원이 이뤄진다.

삼성서울병원이 수술방 인력난을 로봇으로 보완하는 연구에 본격적으로 나선 계기 중 하나는 2024년 의정 갈등으로 발생한 전공의 집단사직 사태였다. 당시 대학병원에서는 전공의가 빠지면서 수술이 중단되거나 규모가 축소되는 일이 이어졌다. 수술을 진행하기 위해 필요한 숙련 인력 부족 문제가 다시 부각된 것이다.
정용기 삼성서울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는 지역병원이나 중소병원에서는 숙련된 인력을 구하기가 더욱 어렵다고 설명했다. 수술 시간이 세 시간을 넘는 경우에도 의료진이 내시경을 계속 잡거나 피와 체액을 빼내는 석션 작업, 조직을 당기는 동작 등을 반복해야 하는 만큼 이런 단순 작업을 휴머노이드가 맡으면 의사가 수술에 더 집중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번 로봇 개발에는 레인보우로보틱스와 에이딘로보틱스, 하해호, 삼성융합의과학원, 서울대, 국립암센터, 전북대병원 등이 컨소시엄으로 참여했다. 아직 배워야 할 동작은 많지만 현재 명령에 따른 동작 성공률은 95%를 넘는다. 수술에서 자주 사용하는 다섯 가지 기구를 집어 의사에게 전달하는 작업은 성공률이 98.7%에 달했다.
연구진은 앞으로 인공지능 기술을 더욱 발전시키면 수술방 간호사와 전공의가 맡아온 일부 역할까지 휴머노이드 로봇이 수행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정 교수는 외과 의사의 역할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기술이 발전하면 그 방향으로 갈 수 있다고 설명하며 2029년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에 들어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부는 삼성서울병원이 진행하는 해당 과제에 2029년까지 연구개발비 138억3500만원을 투입할 예정이다. 올해 11월 평가를 통해 2단계 투자 여부도 결정된다.
삼성서울병원이 집중하는 분야는 기존 수술 로봇과는 다르다. 미국의 존슨앤드존슨, 메드트로닉, 인튜이티브서지컬 등은 의사가 콘솔에 앉아 로봇팔을 직접 조종하는 방식의 수술 로봇을 개발해 왔다. 반면 삼성서울병원은 수술 과정에서 의료진과 로봇이 함께 움직이는 협업형 로봇 개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핵심으로 떠오른 것이 데이터다. 연구진은 로봇의 지능을 얼마나 정교하게 만드는지가 앞으로의 경쟁력을 좌우할 것으로 보고 수술방 자체를 일종의 ‘데이터 공장’으로 만들고 있다. 시각 센서를 활용해 의사의 손가락 움직임을 수집하고, 환자의 동의를 얻어 수술실 전체를 촬영하는 카메라도 설치했다.
수술에 참여하는 의료진의 이동 경로부터 복강경 등 수술 기구를 어디에, 어떤 각도로 넣는지까지 다양한 정보를 데이터로 축적하고 있다. 수술방에는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단순히 개별 동작만 학습해서는 충분하지 않고 수술실 전체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로봇이 이해하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판단이다.
오 교수는 앞으로 휴머노이드 수술 로봇 경쟁이 결국 데이터 경쟁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수술 과정에서 쌓이는 방대한 데이터를 얼마나 확보하고 이를 인공지능 학습에 활용하느냐가 로봇의 성능을 좌우할 수 있다는 의미다. 삼성서울병원은 이를 바탕으로 수술 보조 로봇의 기능을 고도화해 2029년 임상시험 진입을 목표로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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